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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ashitani-150.jpg[Iroha So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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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시로 온천 마을에서
키타오지 로산진의 예술적 발전을 눈에 담으며

rosanjin.jpg사람들은 키타오지 로산진(1883-1959)을 처음 접할 때 꽤 장수했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의 삶은 그가 헌신해온 “미(美)를 추구하며 그를 전파하고자 하는 정신”과 함께 걸어온 길에 담겨있습니다. 예술가로서, 그는 싫증을 잘 느끼는 타입으로 많은 분야에 자신의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일본 사람들에게 그는 서예가, 도예가, 심지어 레스토랑 경영자 등 여러 분야에서 활약한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1930년대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칭송받는 예술가가 되고, 그는 여러가지 도예 작품들을 출품합니다. 뿐만아니라 그는 해외로 여행하며 샤갈과 피카소 같은 위대한 예술가들을 직접 만나기도 합니다. 그는 다소 독단적인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었으며, 때때로 자신이 다른 예술가보다 한참 더 뛰어나다는 듯이 퉁명스럽고 오만한 사람이었습니다.

Alexandre Leroi Cortot 작성
2011년 3월 30일 게재

로산진의 도예가로서의 첫 경험
어느 유명한 도예가가 로산진을 야마시로에 초대했습니다.

카가 시의 야마시로 온센 마을은 그의 흔적을 매우 소중히 하고 있습니다. 이 온천 마을은 료칸 이라고 불리는 일본 전통 여관으로 가득한 곳입니다. 료칸은 20세기 초반에 매우 번성했는데요, 야마시로 온센 마을은 로산진이 자주 방문하며 인정한 역사 깊은 전통과 편안한 숙박 시설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1915년, 그 당시 아직 자기 자신을 타이칸 후쿠다로 부르던 로산진이 차차 유명해질 쯤, 몇 주를 야마시로 온센에서 머무르게 됩니다. 카나자와에서 약간의 시간을 보낸 그는, 야마시로 온천마을의 지역 예술가를 소개받게 됩니다. 그는 그 마을의 유명한 도예가인 세이카 스다의 집에 초대 받아, 그의 가마를 사용하게 됩니다. 이 것이 로산진의 첫 도예 체험이 되고, 그 이후 로산진은 도예에 즉시 빠져들게 됩니다. 그는 마침내 일본의 도예 선구자들 중 한 사람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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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전원 주택을 따라 걸어,
다이쇼 시대의 분위기를 감상해 봅시다.

1915년과 1916년 사이, 가을과 겨울에 그는 이로하 소안이라는 야마시로 마을의 중앙에 위치한 아름다운 주택에 초대 받아 머무르게 됩니다. higashitani-165.jpg잘 복원된 이로하 소안은 2002년 이래로 대중에게 개방되어 있습니다. 원래 모습을 최대한 보존하여, 이 주택에는 로산진의 초기, 후기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많은 표본들이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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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훌륭한 전원 주택을 따라 걷다 보면, 여러분은 요시히토 천왕이 1912년부터 1923년동안 일본을 다스린 다이쇼 시대의 분위기를 잘 감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주택의 다도를 하기 위한 공간인 전통적 다실은 유럽 여러 나라들의 현대 디자인 느낌을 불러 일으키는 여러가지 장식품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방문객들은 로산진이 화가로서 많은 그림 작품을 남겼던 정원을 바라보며 발코니에서 편안하게 녹차를 즐길 수 있습니다. 그는 확실히 그 곳에서의 생활을 즐겼고, 나중에 야마시로 온센 마을을 방문 할 때마다 친구에게 이 주택에 대한 것을 계속해서 물어 보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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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레스토랑 경영자 일을 시작하면서
도쿄에서 미식가 클럽을 기반으로 한
회원제 식당을 열었습니다.

로산진의 도예가로서의 작업은 극도로 우아한 것이 특징입니다. 그 자신이 “요리를 위한 옷” 이라고 부를 만큼 식기에 대한 열정이 컸던 그는, 후에 카가 지역의 계절별 요리 재료와 음식 문화에 대한 특별함에 큰 매력을 느끼게 됩니다. 그는 또한 카나자와에 있는 유명한 요정(전통 요리점)의 대가로 알려진 사람으로 부터 카가 요리의 예술적 아름다움과 다도를 배우게 됩니다.

1921년, 그는 동경에서 미식가 클럽을 기반으로 한 회원제 식당을 열며, 레스토랑 경영자로서 첫발을 내딛습니다.

두 번째 공중탕인 코소유는 로산진이 야마시로 온센 마을에 있었을 때와 매우 흡사하게, 새롭게 지어졌습니다.

이로하 소안에 머무는 일로, 로산진은 서예가에서 요리 관련 예술을 하도록 진로를 바꾸게 되었습니다. 이 마을 자체에서 로산진이 야마시로를 방문했던 흔적을 많이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서예가로서 잘 알려진 그 시절에, 그는 지역 사람들에게 야마시로의 몇몇 료칸의 나무 간판을 만들도록 부탁을 받았습니다. 아직까지 몇몇 료칸은 그 간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요시노야 료칸은 료칸 자체는 사라져 버렸으나 료칸의 원래 대문은 아직까지 잘 보존되어있습니다.
higashitani-153.jpg[Kosoyu]예전에 이 땅위에 있던 야마시로 지역의 두 공중탕중 하나인 소유는 아주 우아한 나무로 된 외부 디자인이 인상적입니다. 길을 건너면, 다른 공중탕인 코소유가 있습니다. 이 공중탕은 로산진이 야마시로 온센 마을에 방문했을 때와 매우 흡사하게 재건축 되었습니다. 아주 우아한 이 전시관에는 이 지역의 최고의 공예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야마나카 식기나 쿠타니야키 도자기, 혹은 그 시절에 꽤나 인기가 있던 우아한 스테인드 글래스 같은 것들입니다. 이로하 소안의 입구로 가기 위해 로산진이 걷던 길을 따라가 보면, 여러분은 다이쇼 시대의 분위기를 쉽게 감상하실 수 있을 것이며, 동시에 이 시대의 가장 위대했던 예술가의 발전의 중요한 역할을 한 마을의 온상을 보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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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하 소안 박물관 / 카가시 야마시로 온센 18-5 지도
야마시로 온센 코소유 공중탕 / 카가시 야마시로 온센 18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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